'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원자력 폭발 사고까지 예고 없이 찾아온 초유의 재난 앞에 한반도는 일대 혼란에 휩싸인다. 방사능 유출의 공포는 점차 고조되고 2차 폭발의 위험을 막기 위해 시민들은 목숨 건 사투를 벌인다.' 이는 최근 개봉한 영화 ‘판도라’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나 벌어질 법한 황당한 재난영화로 간단히 즐기고 넘겨버리기에는 현실적 두려움이 꽤나 크게 느껴진다. 

작년 가을 진도 5.8의 경주지진은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인식을 안겨줬다. 이후 ‘판도라’에서 나타난 이야기처럼 지진으로 인한 원전사고 대처가 완벽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됐다. 최근 선진국에서 핵발전은 사양산업으로 간주된다고 한다. 영국, 미국, 러시아, 일본 등 핵발전을 주도해온 선진국이 크고 작은 원전사고를 당하면서 핵발전 안전을 믿지 못하게 됐고, 그에 따른 안전비용 증가로 경제성까지 낮아졌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원전 밀집도가 높은 나라다. 이미 25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1기는 가동 승인을 기다리고, 4기는 건설 중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원전의 문제는 원전시설 밀집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그런 원전 주변에 주요 국가기간산업이 다수 밀집돼 있고 수백만명의 시민이 거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전을 둘러싼 에너지 문제는 이해관계자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수 있다. 원전 건설을 찬성하는 쪽은 대부분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값싼 전기를 풍족하게 공급하기 위해 꼭 필요한 에너지원이 원자력이고 이것이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입장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우리나라의 현실적 여건에서 쉽게 무시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원전 건설이 현재를 대변하는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더욱이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영화 ‘판도라’에서와 같은 대재앙을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지금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재난의 불확실성을 방관하는 것은 4차산업 혁명을 준비하겠다는 선진국가의 준비자세와는 너무 다른 모순이 아닌가.

그렇다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고 시민의 안전까지 함께 고려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 있을까. 우선은 원전에 의존하는 에너지전략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신재생에너지 활용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에너지 전략 수립과 함께 시민이 주도하는 에너지 절약 노력도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전력소비량은 독일의 3배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독일 수준으로 전기를 절약하면 대략 40%의 전기를 절약할 수 있고, 그러면 핵발전소를 모두 없앨 수 있는 수준이 될지도 모른다. 최근 부산시는 경주지진과 원전 재난영화 ‘판도라‘ 개봉 이후 높아지는 시민의 불안을 해소하고, 원전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올해부터 방사능방재대책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특히 2017년을 ‘2030년 클린에너지 도시 원년’으로 선포해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와 관련 산업 육성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리원전이 여전히 가동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이 가지는 불안감은 여전할 수밖에 없다. 지자체 중심으로 갖춰진 행정적 주민보호체계만으로는 불시에 일어날 수 있는 안보 불안에 대한 불확실성을 책임지기에는 여전히 많은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문득 2013년 다보스포럼에서 미국의 세계정책연구소 미셸 부커 소장이 제기한 ‘회색 코뿔소(Gray Rhino)’라는 개념이 생각난다. 이 개념은 2톤 무게의 코뿔소가 육중한 몸을 흔들고 멀리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데, 그런데도 이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혹은 무시하다가 큰 위기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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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에너지경제

http://www.ekn.kr/news/article.html?no=263604